본문 바로가기

듣는즐거움

Timofei Dokshizer - Oh! Quand je dors 꿈에 오소서

모름지기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재능을 부러워하기 마련이다
내 경우에는 글 잘 쓰는 사람이 그렇다. 대화라면 서로의 눈을 보고 진심이라도 전할 수 있지, 일면식도 없고 취향도 알 수 없는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를 그 어떤 시각적인 눈속임 없이 글만으로 사로잡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재능인가

나는 이런 재능이 적재적소를 만나 가장 반짝이는 순간 중 하나가 라디오 오프닝이 아닐까 생각한다
짧은 시그널 후 오로지 진행자의 목소리와 글 내용으로만 누군가의 관심을 붙잡아야 하는 그 순간
그래서 나는 라디오 오프닝 듣는 걸 매우 좋아한다

그동안 들었던 수많은 오프닝 중 기억에 남는 하나가 KBS 클래식 FM <장일범의 가정음악> 예전 오프닝 중 하나인데, 미셸 공드리의 영화 <수면의 과학>을 언급하며 시작한다
영화 속 주인공은 세상과의 소통이 영 서툴기만 하다. 그러던 그도 꿈속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게 없는 슈퍼히어로가 된다
뭐든지 가능한 꿈 속에선 엄청나게 거대해진 손으로 현실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회사 사람들을 혼내주기도 하고,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도 하고 능숙하게 사랑도 한다

 

이미지 출처 : 다음 영화


영화는 이 부분을 조금 극단적으로 묘사했지만, 사실 누구나 다들 꿈속 무의식의 세상에선 현실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염원을 위로받기도 하고 그러는 게 아닐까 그런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. 오래되어서 정확히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. (그런데 정작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!)

 

아무튼 <수면의 과학>이란 영화와 꿈에 대한 내용의 오프닝 후 선곡된 곡이 오늘 추천하려고 하는 이 곡
헝가리 낭만주의 작곡가 Franz List 프란츠 리스트의 가곡 'Oh! Quand je dors' 오, 꿈에 오소서 혹은 오, 내가 잠들었을 때이다

 

Timofei Dokshizer - Liszt: Oh! Quand Je Dors, S.282

 

Oh! quand je dors, viens auprès de ma couche
오 내가 잠들었을 때에, 내 곁으로 오라

라고 시작하는 이 곡은 프랑스의 대문호인 빅토르 위고(그렇다 레미제라블을 쓴 그 유명한 빅토르 위고다!)가 쓴 시에 리스트가 멜로디를 붙인 성악곡으로, 러시아 트럼펫 연주자 Timofei Dokshizer 티모페이 독쉬체르의 연주곡 버전이다. 이 분 연주를 들을 때마다 차가운 금속에서 이렇게 따뜻한 소리를 만들어 내다니 참 경이로운 일이지,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

 

그때도 느꼈지만 아침 9시 방송 오프닝에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곡을 틀어주다니, 외출 준비하면서 다시 침대 안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었지 뭐야