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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의기록/이런걸샀어

쉬민케 호라담 12색 고체물감

그 유혹은 어느날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―

이미 서랍장 한 구석 스케치북과 색연필 세트들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,

그것이 눈에 들어온 그 때부터 나의 뇌내망상극장에서는 여행지에서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여유롭게 수채화를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이 뭉게뭉게 펼쳐졌고 그 순간,

사실,

이미 게임은 끝난 거였다

 

물론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

일주일간 모든 종류의 고체물감 후기란 후기는 다 읽었고, 수없이 장바구니를 담았다 비웠다 했으며, 독일 아마존 직구도 생각했다

겨우 손바닥만한 주제에 12색에 10만원이라는 미친 가격의 물건을 덜컥 지르기에는 이것 또한 머지않아 서랍템이 될 확률이 불 보듯 뻔했으니까

 

누군가는 쉬민케를 사는 것은 돈지랄이라고도 했다

나같은 초보자들에게는 윈저앤뉴튼이나 반고흐 정도면 충분하고, 그에 비해 가격이 몇 배인데도 불구하고 쉬민케가 가진 장점이라곤 겨우 입자가 좀 고운 것과 발색이 좀 좋은 것 뿐인데 가격은 터무니 없이 비싸다고

 

그러나 우리는 안다

욕망을 접어두고 수준에 맞게 일단 적당한 걸 구입한다 해도, 결국은 돌고 돌아 기어이 저 물건을 손에 쥐게 되고 말리라는 걸

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,

한 손에 쏙 들어오는 저 철제케이스가 갖고 싶었다(...)

 

아 정말 너무 예쁘다

 

이를테면 이런 거다

코덕이라면 로라 메르시에 무펄 섀도가 좋다는 건 다 안다

그 중에서도 제일 유명템은 수지가 발랐다는 진저이고 시중엔 수많은 진저 저렴이들이 존재한다. 아리따움 진저파우더, 네이처 진저베이지, 삐아 모태청순 등등등

로라 하나 살 돈이면 이 저렴이들을 무려 7개 이상 살 수 있다

물론 로라가 훨씬 입자가 곱고 지속력과 밀착력이 좋다고는 하지만, 사실 까놓고 보면 색도 거의 비슷하고 일단 눈에 올리면 그 차이는 겨우 나만 아는 수준일 뿐이다

그러나 우리는 이 미세한 차이에 7배에 달하는 돈을 지불한다

어차피 저렴이 이것저것 사 모아도 결국 진저 지를테니까 아예 처음부터 진저 사는게 돈 아끼는 길이라는 거다

그러니까 내 말은 물감도 마찬가지라는 거지

 

결국 대략 일주일 간의 치열한 고민 끝에 나는 이 손바닥만한 물건에 (내 기준) 거금을 투자했고, 마침내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

그리고 그 지름을 합리화 하고자 이리 주절거리는 중이라는 거다

 

 

귀여워!!

카라멜 같다

예상은 했지만 정말 작다 엄지 손톱만한 크기

와중에 알차게 붓도 들어있음

 

 

카드뮴이 들어있는 컬러에는 경고문이 써 있다

그러하다 매우 위험한 중금속이므로

 

 

껍데기까서 케이스에 다시 장착

흑 노란색에 금갔어ㅠ

낱색 두개 더 사서 남은 부분에 채워 넣어야지

 

 

적은 양으로도 발색이 잘 되서 생각보다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다

언제 들고 나갈 수 있을까 근질근질